사무자동화 연구소 우수사원 "우쯔"

애덤스미스

 

많은 사람들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를 정말 좋아합니다. 극도로 입장이 다른 정치가들조차 제가가 자신들의 정책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말합니다. 우파에게 있어 그는 자유시장의 수호자이자 정부의 규제에 반대하는 강경한 운동가 이였습니다. 좌파에게 있어 애덤스미스는 막스주의 사샂의 햄심이 되는 노동가치이론의 창시자 였습니다. 정치적 신녕이 무엇이든 간에 애덤스미스의 이름은 그들사상에 신뢰감을 실어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교면에서는 애덤스미스가 그다지 우리가 알고 있는 멋진 영웅과는 거리가 먼것 같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파이프 주 커콜디에서 723년 마거릿 더글러스와 애덤스미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법률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스미스가 태어나기 6개월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와 특별히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도덕철할긍ㄹ 공부하고 나중에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논리학 교수와 도덕철학 교수를 맡았습니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였지만 시원시원한 코와 멋진 눈, 두드러진 아랫입술로 그는 강렬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거기에다 신경경련과 언어장애도 격고있어서 종종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책들 말고는 어느 것들과도 친하지 않다"

그러나 스미스의 명성은 1759년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도덕적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한 도덕감정론을 펴낼때까지만 해도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습니다. 1764년에 그는 미래의 버클루 공작의 개인교수가 되면서 프랑스와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고 다녔습니다. 거기서 그는 볼테르, 벤저민 프랭클린, 프랑수아 케네 등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스미스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툴루즈에서 따분한 생활을 하고 있을때였습니다. 그 책이 바로 경제학의 고전파를 출범시킨 "국부론" 이였습니다. 유럽여행을 마친후 스미스는 커콜디로 돌아와 1784년 그의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6년 후 그는 독신자로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과일가게에서 사람들을 위해서 고기를 파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은 돈을 벌기위해서 과일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팝니다. 그런데 과일을 팔기 위해서는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부를 추구하기 위해 과일가게 사장은 사회적 요구에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시장 경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인다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살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개인의 탁욕이 집단의 이익을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업가들이 거래가 더 활발해지기를 원하면 상대방에게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는 서로에게 좋은 윈윈인 상황을 만들게 되며 자동으로 발생하고 조절되는 동적이고 자율적인 규제 과정입니다. 스미스는 이 이론으로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규제와 보호주의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에선 재산권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법과 도덕이 확립되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종종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데 그는 그럴만한 인지도와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인 '보이지 않는 손'은 그의 1776년 저서 '국부론'에서부터 만들어 졌습니다. 이후 이것은 150년이 넘도록 고전파 경제학의 시대를 이끌었고 오늘날 까지도 기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경제적 토론의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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